현대차그룹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가 다가오는 2025년을 기점으로 브랜드의 외연과 내실을 동시에 다지는 대대적인 라인업 재편에 나선다. 전기차 수요 정체(캐즘)에 대응하기 위해 주력 모델에 하이브리드 심장을 이식하는 한편, 브랜드의 격을 높일 초대형 전기 SUV와 고성능 모델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신차 출시를 넘어, 판매량 방어와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이미지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주력 모델의 구원투수, 하이브리드 라인업 가세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최근 내년도 신차 출시 로드맵을 확정하고 내부 공유를 마쳤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제네시스 판매량의 허리를 담당하는 G80과 GV80에 하이브리드 모델이 투입된다는 점이다. GV80 하이브리드는 내년 9월, G80 하이브리드는 12월 출시가 유력하다. 2027년에는 중형 SUV인 GV70에도 하이브리드 모델이 추가될 것으로 보여, 전 라인업에 걸친 전동화 속도 조절이 감지된다.
이러한 결정은 최근 제네시스의 판매 실적 흐름과 무관치 않다. 모델 노후화가 진행된 G80과 GV80은 신차 효과가 희석되며 올해 10월 누적 기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2%, 20.2% 판매량이 감소했다. 특히 글로벌 시장, 그중에서도 미국에서는 전기차 세액공제 종료로 EV 판매가 주춤한 반면 하이브리드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하이브리드 라인업 보강은 실적 반등을 위한 필수적인 선택지로 평가받는다.
F세그먼트의 새로운 강자, GV90와 G90 부분 변경
브랜드의 위상을 높일 플래그십 모델들의 변화도 예고됐다. 내년 상반기에는 제네시스 최초의 대형 전기 SUV인 ‘GV90’이 모습을 드러낸다. 전장 5,000mm가 넘는 F세그먼트급 차체에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적용한 GV90은 지난해 뉴욕 오토쇼에서 공개된 콘셉트카 ‘네오룬’의 디자인 요소를 대거 채용했다. 팰리세이드를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덩치와 고급스러움으로 벤츠 EQS SUV, BMW iX7, 레인지로버 일렉트릭 등과 직접 경쟁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견인할 전망이다.
기존 플래그십 세단인 G90 역시 내년 10월경 부분 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선보이며 상품성을 강화한다. 다만 제네시스는 단순히 기존 세단의 상품성 개선에 그치지 않고, ‘마그마’ 프로그램을 통해 브랜드의 한계를 또 한 번 시험하고 있다.
‘SUV 홍수’ 속의 파격, G90 윙백 콘셉트
최근 프랑스에서 열린 행사에서 공개된 ‘G90 윙백(Wingback)’ 콘셉트는 제네시스가 그리는 고성능 럭셔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GV60 마그마 양산형 등과 함께 공개된 이 모델은 대형 세단인 G90을 기반으로 만든 고성능 왜건 형태로, 현장에서 조용한 돌풍을 일으켰다.
루크 동커볼케 현대차그룹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는 현재 자동차 시장에 대해 “SUV의 범람이 포화 상태를 야기할 것”이라고 진단하며, 윙백과 같은 새로운 차체 형상이 다시 주목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G90 윙백은 기존 G90의 3,180mm 휠베이스와 플랫폼을 유지하면서도 후면부 디자인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날렵해진 전면 범퍼와 과감한 그릴, 지붕 위의 각진 핀, 그리고 듀얼 스포일러와 디퓨저가 결합된 후면부는 정통 세단과는 전혀 다른 역동성을 자아낸다.
실내 역시 샤무드 소재를 적용하고 초록색 파이핑과 스티치로 마감해, 고성능 모델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는 제네시스가 ‘마그마’라는 서브 브랜드를 통해 얼마나 다양한 형태의 파생 모델을 고민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BMW M, 벤츠 AMG를 겨냥한 고성능 기술력
제네시스의 고성능 부문을 총괄하는 만프레드 하러 부사장은 차기 마그마 모델을 위해 G90 섀시를 개량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업계에서는 윙백이나 X 그란 쿠페 같은 파생 모델들이 단순한 디자인 습작이 아니라, 강화된 주행 성능을 바탕으로 실제 양산까지 고려된 프로젝트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파워트레인 측면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기존 3.5리터 트윈 터보 V6 엔진을 넘어선 강력한 심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효율과 출력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전동화 파워트레인이 유력하지만, 일각에서는 V8 엔진 탑재 가능성도 제기된다. 제네시스가 르망 하이퍼카 참전을 위해 개발 중인 V8 레이싱 엔진 기술이 양산차인 마그마 라인업으로 이전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는 BMW M이나 메르세데스-AMG가 플래그십 고성능 모델에 V8 기반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내년 제네시스는 하이브리드를 통한 대중성 확보와 GV90, 마그마 라인업을 통한 럭셔리 고성능 이미지 구축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게 된다. 시장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도 브랜드 고유의 색깔을 잃지 않으려는 제네시스의 행보에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