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폴스타의 두 얼굴: 눈부신 하드웨어 혁신과 뼈아픈 소프트웨어의 배신

최근 출근길, 유난히 낮고 매끄러운 루프 라인을 뽐내는 차 한 대가 눈길을 훔쳤다. 안정적인 휠베이스와 우아하게 떨어지는 곡선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작년 10월 국내 시장에 등판한 이후 조용히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쿠페형 전기 SUV, 폴스타4였다. 초기엔 월 20대 남짓이던 등록 대수가 연말을 기점으로 치솟더니, 2026년 5월 현재 누적 3000대 돌파를 코앞에 두고 있다.

아내와 함께 차에 오르자마자 웬만한 차에선 보기 힘든 기발한 공간 구성이 우릴 반겼다. 센터 콘솔이 특이하게도 위아래가 분리된 2층 구조였는데, 상단은 오디오 다이얼 하나만 덩그러니 남겨둬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줬고 하단엔 깊숙한 수납공간이 자리했다. 늘 핸드백을 챙겨 다니는 아내가 가방을 발밑에 두거나 억지로 뒷좌석으로 넘길 필요가 없어졌다며 꽤나 반색을 표했다.

혁신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낯선 문법

이 차는 시작부터 운전자를 묘하게 자극한다. 물리적인 시동 버튼은 아예 흔적도 없다. 그저 스마트키를 쥐고 다가가 팝업식 도어 핸들을 당기면, 바닥에 선명한 북극성 로고가 투사되며 시스템이 스르륵 깨어난다. 실내는 스웨덴 특유의 정갈한 앰비언트 조명과 티맵 인포테인먼트, 네이버 웨일 등이 탑재된 큼지막한 센터 디스플레이가 어우러져 제법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트에 앉으면 체형에 맞게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메모리 시트가 든든하게 몸을 지지해 준다.

가장 파격적인 대목은 단연 뒷유리의 삭제다. 후방 시야를 온전히 루프에 달린 카메라와 디지털 룸미러에 맡겼다. 화질이 지나치게 선명해 살짝 눈이 부신 감은 있지만 금세 적응됐고, 오히려 이 실험적인 설계 덕분에 차량 후면부의 유려한 곡선이 완성될 수 있었다. 사이드미러 조절이나 트렁크 개폐 같은 자잘한 버튼들마저 싹 다 중앙 디스플레이 안으로 욱여넣었다. 익숙했던 조작 방식과의 강제 이별이 처음엔 좀 당혹스럽지만 달리다 보면 금방 손에 익는다.

참고로 폴스타4는 볼보와 지리자동차의 합작 플랫폼을 베이스로 하는데, 최근 글로벌 금융 리스크 완화와 생산 거점 다각화를 위해 르노코리아 부산 공장에서도 북미 수출용 모델을 시범 생산하며 시장 확장을 꾀하고 있다.

훌륭한 퍼포먼스, 그러나 맴도는 기시감

도로 위에서의 몸놀림은 흠잡을 데가 없다. 듀얼모터 기준 544마력을 뿜어내며 제로백 3.8초를 끊어버리는 폭발력, 싱글모터 기준 최대 511km에 달하는 넉넉한 주행거리는 기본이다. 노면 충격을 부드럽게 걸러내는 승차감과 단호하게 치고 나가는 가속력, 알아서 앞차와의 간격을 여유롭게 조절해 주는 자율주행 보조 시스템은 운전의 피로를 단번에 날려준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이 화려한 스펙과 짜릿한 주행 질감 이면에는 묘한 기시감이 맴돈다. 내가 폴스타라는 브랜드의 하드웨어를 진심으로 즐기면서도, 막상 이들의 차량을 소유하는 것에는 짙은 회의감을 느끼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소프트웨어의 배신이다.

SDV라는 거창한 약속과 18개월의 희망고문

시간을 조금 거슬러 과거 2024년 9월,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렸던 폴스타3 런칭 행사 당시를 떠올려보자. 폴스타3와 형제격인 볼보 EX90은 미국 시장에 출시된 최초의 진정한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등장했다.

SDV로의 전환은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 그 이상을 의미하는 엄청난 패러다임 시프트다. 제조사가 독자적인 소프트웨어 스택을 쥐고 무선 업데이트(OTA)를 통해 구동계부터 도어록까지 차량의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가 시장에서 압도적인 원가 절감과 매끄러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핵심 비결이기도 하다. 당시 폴스타 측은 스티어링 휠을 통한 음악 볼륨 조절이나 트랙 넘기기 같은 기본적인 기능들이 ‘조만간’ OTA 업데이트로 지원될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18개월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 2026년 5월 현재 시점에서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반쪽짜리 혁신이 남긴 씁쓸한 뒷맛

소비자가 굳이 SDV라는 생소한 개념을 이해해가며 지갑을 여는 이유는, 더 저렴한 유지비용과 빠릿빠릿한 업데이트 주기가 주는 쾌적함 때문이다. 그런데 무려 9만 3천 달러가 넘는 고가의 차량에서 스티어링 휠에 달린 12개의 버튼 중 8개는 여전히 99%의 상황에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심지어 운전석에서 뒷좌석 창문을 여닫는 스위치마저 원가 절감의 흔적이 역력한 얄팍한 토글 스위치 하나로 퉁쳐놨다.

볼륨업 버튼을 누르면 볼륨이 1 올라가는, 그 단순한 코드 한 줄을 짜서 배포하는 데 1년 반이 넘게 걸린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는가. 심지어 이 핵심 기능들이 내년 연식 변경 모델이 나와야 추가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폴스타가 빚어낸 세련된 실루엣과 경쾌한 주행 질감은 분명 매력적인 무기다. 하지만 기본조차 갖춰지지 않은 엉성한 인터페이스와 느려터진 업데이트 속도는, 그들이 부르짖던 소프트웨어 혁신이 아직은 껍데기에 불과함을 뼈아프게 증명하고 있다. 완벽한 하드웨어를 만들어 놓고도 정작 차와 교감하는 일상적인 경험을 망쳐버렸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